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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도행전7장 스데반의 설교

by 소북소북 2021.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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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자유롭게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를 중심으로-

 

 

서론

사도행전 7장에 기록된 스데반의 설교는 성전과 율법을 모독했다는 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발 내용(6:11-14)과 직결되어 있다. 스데반은 그의 설교에서 이 두 가지 주제에 대해 본인을 변론하며, 나아가 그리스도를 변론, 증거하고 있다. 누가는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유대인들에게 편만해 있던 선민사상을 고발하고, 장소에 제한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함으로 앞으로 이방인들에게 전해질 복음 전파에 대한 서막을 열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본문의 설교 구조를 통해 스데반이 그의 설교를 통해 말하고자 한 내용과, 그 당시 유대인들의 신앙과 다른 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배경 이해

1세기 팔레스틴 유대교는 중요한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한 분 참 하나님을 믿는 유일신론과 우주의 창조주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했으며 언약을 통해서 오직 자기들에게만 전념하신다는 믿음이다. 또한 율법은 자신이 선택하고 구속하신 백성이 어떻게 살기 원하시는지를 보여 주려고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로 소중하게 생각했다.

 

율법 준수는 하나님의 백성의 구성원임을 보여 주는 하나의 표지이며 심지어 유일한 표지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 백성에게 성전을 중심으로 한 땅을 주신 하나님을 믿었다. 이들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의 핵심은 땅의 약속임을 믿었고, 이것은 유대교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특별히 그 땅 안에 특별한 장소로 간주되던 성전에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거기에 두심으로 믿었다.

 

마지막으로 예수 시대의 팔레스틴 유대인들은 대부분이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행동하실 날을 고대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포로 가운데서 귀환하게 하시는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선지자들의 약속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 행동하실 것이라는 이 기대와 갈망은 첫째, 이방인들의 개종이나 복종 혹은 멸망과 맞닿아 있었고, 새롭고 정결케 될 성전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있었다. 그들은 그 땅에 통치자로 사는 이방인들에 의해 더럽혀진 예배를 정결케 할 소망을 품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1세기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대신하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대리인 역할을 할 인물, 즉 ‘메시아’를 보내시리라고 기대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가운데, 교회는 성령의 도래와 함께 출범했다. 성령께서 오시고 교회는 전 세계적인 선교를 시작할 준비가 거의 되었다. 지금까지 교회는 오직 유대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었으며, 또한 예루살렘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성령께서는 그의 백성을 더욱 넓은 세상으로 밀어내려 하고 계신다.

 

이러한 성령의 사역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유대인들의 사상, 즉 그들의 선민사상의 뿌리 위에 세워진 성전과 율법의 낡은 생각들을 하나님은 부수고 싶으셨다. 이미 그들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로 성취되고 완성된 성전과 율법의 새로운 개념을 부어 주시고, 복음을 자유롭게 하실 계획을 가지셨던 것이다.


이러한 때에, 사도행전 6:11-14절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거짓 증인을 세워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모독했다고 공격한다. 이것에 대해 스데반은 더 위대한 증인들, 아브라함, 요셉, 모세를 세워서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다. 성전과 율법 문제는 당시 헬라파 유대인들 사이에서 당연 가장 민감한 문제였다. 이제 스데반은, 아니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가장 긴 설교를 통해, 자기 자신을 변론하며, 그리스도를 변론하며, 나아가 이미 그들 가운데 오신 메시아를 증거하고 있다.

 

 

 

스데반 설교의 구조

스데반은 위에서 언급한 성전과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에 대해서 그의 긴 설교를 통해 증거하고 있다. 그의 설교는 두 가지 고소에 대한 답이다. 17-43절까지 율법 모독에 대해, 그리고 성전에 대해 44절 이하 답을 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구속 역사를 아브라함, 요셉, 모세, 그리고 성막과 성전 이야기로 이어가지만, 길이로는 모세에 가장 많은 양을 할애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특히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자로 묘사한다. 7장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7:1-43 구속의 역사와 영광의 하나님


   2-8  아브라함의 하나님  
   9-16  요셉의 하나님 
   17-43 모세의 하나님


7:44-50 성막과 성전  
7:51-53 적용  
7:54-60 스데반의 순교

 

스데반의 설교는 인클루지오 구조로써 누가는 7:2에서 ‘영광의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7:55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맺고 있다. 스데반의 변론의 두 가지 핵심 주제는 첫째, 성전이며, 둘째, 율법이다. 성전에 관한 변론에서 스데반은 아브라함, 요셉, 모세 그리고 성막과 성전 이야기로 변론하고 있으며, 율법에 관한 변론에서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메시아와 율법을 거부했음을 지적한다.

 

성전

이스라엘 하나님은 어떤 한 장소에 제한되지 않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스데반 연설 중 핵심 주장들은 아브라함이 아직 이교적인 메소포 타미야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고(2절), 요셉이 심지어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을 때에도 그와 함께 계셨다는 것과(9절), 하나님께서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에게 오셨으며 그럼으로써 그 장소를 ‘거룩한 땅’으로 만드셨다는 것(30,31절)이다.

 

또한 비록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셨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전에 계시지 않는다 ‘는 것(48절)을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영광은 성막, 성전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은 성전과 성막에 국한된 게 아니었음을 주장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한다. 스데반은 유대인의 잘못된 성전관을 지적하고, 하나님은 예루살렘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심을 강조하고 있다. 특별히 48-50절에서 그는 성전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스데반은 ‘손으로 지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성전에 계시는 분이 아니다’라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손으로 지은’ 이란 표현은 바울이 아테네에서 이방 신전을 얘기할 때 썼으며 (행:17:24), 이방 신전, 우상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것은 암묵적으로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성전에만 계신 걸로 착각하면서 성전을 우상 숭배했음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데반은 지금 내가 성전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성전을 우상숭배 장소로 만들었음을, 성전 모독 죄의 화살을 유대인들에게 오히려 돌리고 있다.

 

율법

스데반이 모세와 율법을 존중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것이었다.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나 해방자로 임명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 이셨으며(35절), 그는 백성들에게 전해 줄 ‘산 말씀을 받았다.’(38절)

 

그러나 그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하늘에서 보낸 해방자로 깨닫지 못했으며(25절), 그를 ‘떠밀었고’(27절), 그의 지도력을 거부했고(35절),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39절 이하). 스데반은 아모스와 이사야를 인용하여 이스라엘이 과거에 율법과 예언자들에게 불충실했던 것을 폭로하고 다시 같은 죄명으로 재판관들을 고소하고 있다.

 

스데반은 그들이 성령과 메시아와 율법을 거스르는 죄를 지었다고 선언한다. 그들이 항상 그분의 호소를 거부함으로 성령을 거스르고 있음을(51절), 조상들은 모든 선지자들을 박해했고,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죽이기까지 했으며, 천사들의 중재를 통해 율법을 받는 특별한 특권을 누렸음에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음(53절)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자를 보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율법을 거부했음을 말하고 있다. 스데반은 모세가 살아있는 말씀을 받아 주었던 것처럼, 예수님이 성령을 받아 우리에게 주셨음을, 율법의 옛 언약 시대는 가고, 성령의 새 언약 시대가 도래했음을 강조함으로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을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누가는 스데반의 가르침과 그의 죽음을 통해 전 세계적인 기독교 선교의 발전에서 수행한 중차대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스데반의 가르침은 예수님이 성전과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은 건물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이 어디 있든지 간에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은 그의 백성들이 어디에 가든지 그들과 함께 가실 준비가 되어 계시며, 복음은 예루살렘에만 갇혀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전 세계를 향한 복음의 물결이 흘러갈 준비가 스데반의 설교와 함께 시작되었다.

 

참고 도서

 

김경진, 『신약 주석: 사도행전』 (서울: 대한 기독교서회, 1999)
Stott, John, 『사도행전 강해: 땅 끝까지 이르러』 (정옥배 옮김: 서울: IVP, 1992): The Message of Acts (The Bible Speaks Today: :eicester: Inter-Varsity Press, 1990)
Wenham D. and S. Walton, (웬함 & 윌튼) 「복음서와 사도행전」 (A Guide to the Gospels and Acts), 성경 이해 1, 박대영 역, 서울: 성서 유니온, 2007〔2001〕, pp.5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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