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아서 2장의 연관성에 관해
서론
사도행전 15장의 내용이 갈라디아서 2장의 사건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와 갈라디아서 2장은 바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때(행 11:30) 일어난 사건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본 소논문에서는 두 견해의 장, 단점을 정리하고 어느 견해가 더 타당성이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
사도행전 15장은 예루살렘교회의에 관한 기록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고 요약된 형태로 소개되어 있으며 누가는 회의록을 수록하지 않았다. 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 즉 예루살렘 교회의 두 기둥인 베드로와 야고보의 연설만을 요약된 형태로 수록해 두었다.
한편 갈라디아서는 이 회의에 직접 참석했던 바울의 증언을 담고 있다. 바울의 직접적인 증언이 사도행전의 제삼자적 증언에 비해 역사적 가치를 더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역사가로서의 누가가 교회의 하나 됨과 복음의 진보라는 그의 편집 의도를 생각해 볼 때, 교회 내 내부 갈등은 극소화하고 화해와 하나 됨을 최대한 강조하는 방향으로 저술되었으리라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1.1. 두 견해의 장점과 단점
1.1.1. 두 회의가 동일하다고 보는 견해의 장점과 단점
먼저 두 회의(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아서 2장)가 동일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동일한 사람들이 있었고 동일한 주제가 논의되었으며, 본질적으로 동일한 해결책이 제시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갈 2장과 행 15장이 같다는 주장을 보면, 첫째, 동일한 사람들이 관여하고 있다.
한쪽은 바울과 바나바와 디도가, 다른 한쪽은 야고보와 베드로와 그 밖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둘째, 이방인 회심자들의 할례라는 동일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셋째, 이방인 신자들이 더는 유대법 아래 있을 필요가 없다는 동일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두 회의를 같은 것으로 본다고 가정하였을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 사도행전의 모임이 공적인 모임이었다고(15:22)말하는 것과 달리 갈라디아서는 사적인 모임이었다고 말한다(2:2). 둘째, 갈라디아서는 사도행전에 언급된 현실적인 결정 사항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셋째, 만약 두 회의가 동일하다면 이때 이뤄진 합의는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갈등과 균열을 왜 조정하지 못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1.1.2. 다르다고 보는 견해의 장점과 단점
사도행전 11장의 예루살렘 방문에서 이루어진 논의가 갈라디아서 2장에서 기록되어 있다고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고 펑(Ronald Y.K. Fung)은 주장한다.
(1) 그것은 왜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이 사도적 칙령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는지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가 쓰인 것은, 바울이 이방인 문제로 인해서 다시금 예루살렘에 올라가 공식적 화합을 갖기 전이란 것이다.
(2) 사도행전 11장과 갈라디아서 2장이 같은 예루살렘 방문이라 볼 때,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에서 일어난 베드로, 바울, 그리고 바나바 사이의 논쟁이 쉽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바나바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던 중 야고보의 사람들이 들어오자 슬쩍 일어나서 나가는데, 이것은 사도적 칙령이 아직 결정되기 전이므로, 그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심각한 약점들도 가지고 있다.
(1) 사도행전 11장은 갈라디아서 2장에서 있었던 신학적 논쟁 같은 것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다반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해서 구호금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곳의 원로들에게 전했다는 보도와 그 일을 마친 다음 안디옥으로 되돌아 왔다(12:25)는 말만 할 뿐이다.
(2) 사도행전 11장 만을 본다면, 바울이 구호금을 갖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는 아직 갈라디아서 2장에 기술된 문제들, 즉 안디옥 교회 내 할례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을 때이다.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 선교 여행은 13장에서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3)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은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간다(갈 2:1), 그런데 사도행전 11장에서는 바나바와 바울이 마가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으로 언급된다(행 12:25).
(4) 만일 갈라디아서 2장에서 다루어진 회의가 사도행전 15장에서 다루어진 회의보다 선행된 것이었다면, 할례 문제는 이미 앞서 열린 회의에서 논의되었고, 그 회의는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기로 결의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열린 회의(사도행전 15장에 서술된 회의)에서 또다시 할례 문제가 핵심 논쟁으로 다루어진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1.2. 타당성
대부분의 학자들이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이 사건을 주후 49년경으로 보고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1-10에서 이 공의회를 가리켜 말하는 것으로 보지만, 많은 학자들은 바울의 묘사가 사도행전의 서술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편 것이다.
결국 갈라디아서가 예루살렘 공의회 전에 기록되었다 주장하는 것은 교회들이 갈라디아 도의 남부에 있었다는 가정을 하고 있으므로, 만약 그 교회들이 북부에 있었다는 견해를 따르면 연대를 예루살렘 공의회 이전으로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 이유는 바울이 북부 지방에 복음을 전한 것이 예루살렘 공의회 이후였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갈라디아서 2장과 사도행전 사이에는 아무런 내용상의 충돌이 없게 되는데 당시 예루살렘 공의회가 아직 열리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관찰들 종합해 볼 때 갈라디아서의 기록 연대를 예루살렘 공회 이후 50년대 중반으로 잡으려는 북갈라디아설을 거부하게 된다. 이 견해를 취하게 되면, 바울은 예루살렘 공회를 통해 이방 기독교인들의 문제와 관련하여 예루살렘 사도들과 합의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행 15장 = 갈 2:1-10), 그 후에 발생한 안디옥 사건을 통해(갈 2:11-14) 그들과 심각한 신학적 차이가 존재함을 발견하고 서로 갈라선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갈라디아서는 바울과 예루살렘 사도들이 서로 갈라선 이후의 상황에서 기록된 편지가 되고 만다. 하지만 만일 남 갈라디아 설을 취하게 되면(행 11:27-30=갈 2:1-10), 바울은 이방인 중에서 전파한 그의 복음을 예루살렘 세 기둥 사도들에게 제출하여 그들과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후에 안디옥 사건에서(갈 2:11-14) 그 합의를 깨뜨리는 베드로의 모순된 처신에 대해 책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안디옥 사건을 통해서 바울과 예루살렘 사도들은 전에 그들의 합의 중에 모호한 점들이 존재했음을 발견하고 예루살렘 공회를 소집하여 그것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하였다. 이렇게 되면 갈라디아서는 안디옥 사건과 예루살렘 공회 중간 어느 시점에 기록된 편지이기 때문에 바울과 베드로 간의 논쟁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 공회를 통해 해소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결론
결론적으로 첫째, 갈라디아서 2장 1-10절까지의 기록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은 사도행전 11장 27-30절까지의 방문과 같은 방문이다. 둘째, 갈라디아서는 구호 방문 뒤 그리고 예루살렘 사도회의 전 그 사이에 쓰여진 편지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역사적으로 일어나지도 않았던 결정을 창작해서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삽입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기독교 복음의 기원과 확장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한 것으로 사도행전의 역사성을 지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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