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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도행전 28장 거침없이 담대하게

by 소북소북 2021.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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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8장


멜리데는 오늘날의 몰타섬. 2: 원주민들 원래 적대적인데 여기서는 친절하다.

 

4절: ‘공의’(헤 디케)는 그리스의 정의의 여신을 가리킴.
11절: 석 달 후에(겨울이라는 의미) 디오스 구로(제우스 신의 쌍둥이 이름). 12: 수라구사는 시칠리 섬의 수도.

15절: 압비오광장은 로마에서 69km 떨어진 곳이고 트레이스 타베르네는 ‘세 여관’이란 뜻으로 로마에서 53km 떨어져 있는 곳.

 

16절: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는 끝이 난다.

17절: 유대지도자들과 면담. 감금되긴 감금되었지만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봐서 가택연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누가가 앞에서 얘기한 것과 상반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데, 누가는 이 사건의 자세한 내용보다는 골자를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18-19: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그들을 회유하려는 발언으로 읽힘.


20절: ‘이스라엘의 소망’
내가 유대인들도 바라던 소망으로 말미암아 매인 바 되었다.
23절:구약의 예언이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다는 것을 선포.
구약의 말씀을 통해 오실 메시아가 예수임을 선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예언이 성취됨을 선포.

 

 

4절: ‘공의’(헤 디케)는 그리스의 정의의 여신을 가리킴.

11절: 석 달 후에(겨울이라는 의미) 디오스 구로(제우스 신의 쌍둥이 이름). 12: 수라구사는 시칠리 섬의 수도.

 

15절: 압비오 광장은 로마에서 69km 떨어진 곳이고 트레이스 타베르네는 ‘세 여관’이란 뜻으로 로마에서 53km 떨어져 있는 곳.

 

16절: ‘우리’라는 일인칭 복수는 끝이 난다.

 

17절: 유대 지도자들과 면담. 감금되긴 감금되었지만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봐서 가택연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누가가 앞에서 얘기한 것과 상반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데, 누가는 이 사건의 자세한 내용보다는 골자를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18-19: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그들을 회유하려는 발언으로 읽힘.

 

20절: ‘이스라엘의 소망’

내가 유대인들도 바라던 소망으로 말미암아 매인 바 되었다.

 

23절:구약의 예언이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다는 것을 선포.

구약의 말씀을 통해 오실 메시아가 예수임을 선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예언이 성취됨을 선포.

 

 

25절: 사 6:9-10 초대 교회에서 많이 인용되던 말씀. 여기서는 70인 역 내용의 전문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눅8:10에서 잠깐 인용하는데 거기서는 전문이 아니라 살짝.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다. 그들이 마음이 완악해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러한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경고의 말씀.

 

28절: 이 말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최종적으로 거부했다는 의미인가?
자기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말씀. 이것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최종적으로 거부했느냐는 말은 아니다. 바울이 로마서 9-11장에서 때가 되면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변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역시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더 이상 유대인들이 먼저라는 구호를 더 이상 여기지 않고, 누가는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은 이러한 바울의 모습이 초대교회 독자들이 취해야 할 모범이라고 생각해서. 유대인들에게 먼저, 다음은 이방인들에게 였지만, 이제는 이방인들에게도 전해도 됨을.

 

30절: ‘자기 셋집에’(엔 이디오 미스또마티)는 ‘셋집’이란 의미보다는 ‘자비로’

2년이 지난 후에는 어떻게 된 것일까?
누가가 주후 60년 정도까지만 이때 행전을 기록했느냐? 자기가 알고 있는 바가 여기 까지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다. 누가는 바울의 순교를 이미 알고 기록하고 있는 힌트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2년 후에 자기 셋집에서 머물고 이렇게 전했다. 2년 후에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확실치는 않으나, 어떤 변화가 있었던 뉘앙스를 준다. 그 이후의 일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여기까지 썼을 것은 가능성이 적다.

바울이 사형당해 죽었다는 것은 전해져 내려온다. 잠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가 다시 체포되어 사형당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나님 나라 전했다는 마지막 말은 1장의 하나님 나라와 인쿨루지오를 이룬다. 바울이 행전이 남기는 마지막 모습은 이제까지 행전에서 선포한 동일한 메시지를 담대하고 거침없이 선포하는 모습으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1:8의 말씀을 온전히 누가가 로마를 땅끝으로 이해했느냐 안 했느냐는 차후의 문제이고, 그 시킴으로 전하고 그 예수의 복음의 담대히 로마에서 전파되고 있는 모습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 복음이 그 많은 저항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배후에서 그 사역을 지휘해 나가고 계셨으므로, 끝까지 복음의 승리로 여기까지 왔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우리도 오늘날 어려움이 오더라도 굴복하지 않고 믿음으로 굳건히 서라는 메시지가 담긴 사도행전이다. 최후의 승리,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최후의 승리를 그 누구도 저지할 수 없다는,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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