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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도행전 28장

by 소북소북 2021.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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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8장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인 28장의 초반부에는 바울이 독사에게 물렸지만, 해를 받지 않은 사건을 기록한다. 이 장면은 사도행전 27장의 두 가지 사건 즉 (1) 바다에서 만난 폭풍 그리고 (2) 배의 파선 등과 함께, (3) 독사에 물린 사건을 기록해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에 부딪쳤던 세 가지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들을 형성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위협으로부터 바울은 다 생명이 보존되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된다.

 

이 과정 - 행 23:11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폭풍, 파선, 독사에 물린 사건에서 구원하셨다.
사도행전 28장의 마지막 구절들은 2가지 주제를 부각한다.
(1) 31절. 긍정적 측면: 복음이 계속해서 확산된다. 복음의 계속적 확산.
(2) 30절. 바울의 고난 강조. 가택연금된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바울의 고난과 복음의 확산이 강조된다.

 

열린 결론(open conclusion)
사도행전이 끝나간다는 느낌이 아니고 아직도 사도행전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열린 결론” 사도행전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문학적 특징이다. 바울의 사역에 읽는 사람들이 참여하라는 초청.

 

단락 구분


1-10 멜리데 섬에서 있었던 사건
11-15 멜리데 섬에서 로마까지의 여정
바울을 향한 환대와 따뜻한 격려가 1-15절까지에서 나오는 주제이다.

 

1. 1-10절 이방인으로부터 받는 환대, 동료 그리스도인들로부터 환대를 받기 이전에 이방인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세 번에 걸쳐서 환대를 받는다. 2, 7, 10절
2절)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7절)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섬의 우두머리가 바울을 환대함.
10절)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식량을 다 버렸는데, 바울 때문에 바울의 일행들(누가, 아리스다고, 백부장 등)이 복(환대)을 누린다.
적용: 바울 일행은 바울 때문에 복을 누렸다. 우리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보호하신다. 아직 안 망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가 있기에 그 회사가 잘 돌아간다. 신실한 그리스도인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2. 11-15 로마에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는 환영과 환대를 기록하고 있다.
11절)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 누가는 왜 배의 머리 장식을 기록하였을까?
디오스구로: 제우스의 쌍동아들. 케스토(Castor), 폴룩스(Pollux)=> 이 두 신은 당시 항해 신이다. 배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신이다. 누가의 의도는 바울의 배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은 디오스구로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4절> 공의(디케): 정의의 여신이다. 바다에서 살아 나온 바울을 공의(디케)가 살지 못하게 한다고 말함.

압비오 광장=> 로마 시에서 남쪽으로 65km 정도 떨어진 시장.
트레이스 타베르네=> 세 여관, 상가나 집들이 집결되어 있는 장소. 작은 집이나 가게들이 모여있는 집결지. 이 지역은 로마로부터 50km 떨어진 지역이다.
로마교회 성도들 두 그룹이 따로 바울을 맞으러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로마서 16장을 통해서 5개의 가정교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현재까지 로마 교회를 방문한 적이 없다. 그런데 로마 교회 성도들이 마중을 나온 것이다. 바울은 로마로 가기 전에 로마서를 먼저 보냈었다. 학자들은 바울이 로마에 가기 3년 전에 로마서를 보낸 것으로 생각한다. 로마서를 쓸 당시 바울은 전도여행처럼 전도단을 이끌고 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바울은 죄수로 로마에 방문하게 된다.

바울은 지금 죄수지만 개선장군과 같이 환영과 영접을 받으면서 로마로 들어가고 있다. 담대함을 얻은 것은 격려를 얻은 것이다.

 

16-31 로마에서의 전도

 

행 28:16-31 로마에서의 전도

결론부의 초점: 바울이 유대인을 만나는 이야기가 주가 된다. 바울이 로마에서 만난 사람은 대부분이 유대인이다. 28장 초반부는 예수 안 믿는 이방인들, 중반부는 예수 믿는 동료 이방인들, 마지막 부분에서는 유대인들을 만났다.
28장 결론부는 비극과 희극의 요소가 있다. 비극: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음. 희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확산되고 있다.

단락 구분

16-22 유대 지도자들을 만나는 바울
23-29 유대인들의 배척에 반응하는 바울
30-31 모든 사람을 환영하며 복음을 전하는 바울


<큰 그림>
사도행전의 결론부의 초점 가운데 하나가 바울이 유대인들을 만나는 장면에 있다.
-결론부의 바울과 적대적인 유대인들과의 만남은 앞 단락(27:1-28:15)과 큰 대조를 이룬다.

 

  • 앞 단락(27:1-28:15)에는 바울이 로마로 오는 도중에 만난 여러 이방인들로부터 오는 호의적인 반응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격려가 강조되었다(27:3; 28:14-15).
  • 그러나 이 단락에서는 로마에 있는 많은 유대인들의 반대가 나온다(28:24). 앞 단락과 이 단락이 강하게 대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비극과 희극의 요소


유대인들의 반대라는 측면은 사도행전의 결론 부분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울은 이런 반대 속에서도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들을 다 환영해 복음을 전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다. 이것은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결코 비극이 아님을 보여준다. 사도행전의 결론부는 마무리하는 형식이 아니라, 계속 진행형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1) 복음의 승리라는 측면, 즉 로마제국의 심장부에서 복음이 방해받지 않고 선포된다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2) 복음이 우선적으로 선포되었던 많은 유대인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비극적 측면이 함께 결론부에 함께 공존하고 있다.

 

*결론부의 세 단락의 이야기들은 공간적, 시간적, 사회적 상황의 관점에서 관찰해 볼 수 있다.


(1) 공간적: 바울이 개인 집에서 복음을 전했다. 가택 연금 상태이기에.
(2) 시간적: 첫 번째(16-22) 이야기: 사흘 후에 벌어진 이야기. 두 번째(23-29) 이야기: 하루 종일 논쟁을 벌임(23절), 세 번째(30-31) 이야기: 2년 동안의 특징. 처음에는 유대인 지도자를 대상으로 하다가 후반부에는 개인인 만남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3) 사회적인 측면: 대상이 바뀜.


유대인 지도자들을 대상으로(17)→  많은 유대인들(23절 그들이.... 많이 오니) → 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모든 종류의 사람들(seekers)에게.. 유대인 + 이방인. 이방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근거는? 31절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주고 메시아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이방인이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의 황제가 통치하고 있는 이 세상의 제국에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제국)를 선포하고 있다. (참고, “하나님의 나라” 23절, 31절 두 번에 걸쳐 언급됨).
로마제국의 심장부에서 로마 황제가 이 땅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 땅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선포하였다.

 

16-22 유대 지도자들을 만나는 바울

 

16절
바울의 감금이 상당히 자유를 누리는 수감이다. 따라서 바울의 자유를 누리는 수감은 바울이 로마법에 저촉되거나 위협적인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바울은 감옥이나, 군대 진영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30절에 의하면 셋집(rented)이다. 또한 평범한 한 사람의 군인에 의해서 보호를 받고 있다(16절). 본래는 2 명의 군인이 지키는 것이 통상적인 방식이다(Digest 48.3.14, 참고, 행 12:6- 이 두 사람은 다시 다른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다른 여러 팀에 의해 교체되었다). 따라서 바울의 동역자들이나 친구들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상태였음을 보여준다(17,23,30, 참고 빌 2:19-30; 4:19).
두 명이 아닌 한 명의 군인, 감옥이 아닌 셋 방에 머묾.=> 자유를 누리는 수감생활.

 

20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노라.”
바울은 복음을 모든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전하기를 원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셨던 종말론적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과 사역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즉 바울은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으면서도 아직 유대인들에게 소망이 있음을 믿고 있다(참고, 롬 11:26-2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을 예수님께서 이루셨다는 소식을 유대인에게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 것이다. 하지만 환영을 받는 대신 쇠사슬에 매여졌다.
다시 말해,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소망이 이제 성취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환영을 받아야 할 사람(선지자)이다. 하지만, 환영을 받는 대신에 쇠사슬에 매인 선지자가 된 상태이다.

 

21-22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파(헬 hairesis)라는 단어는 사도행전에서 사두개파(5:17), 바리새파 (15:5; 26:5) 그리고 그리스도인들(24:5,14; 28:22)에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기독교만 하나의 파(hairesis)가 아니다.


파=> 당시에는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인식되었다.

 

-유대에서 온 편지나 소식이 없어서 바울에 대해서 적대적이지 않다고 한 유대 지도자들이 이 파에 대해서 적대적인 소문은 또 어떻게 들었을까? 이 반대에 관한 소문은 아마도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이 전해준 소문이나 소식 같다.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이 다른 지역을 방문한 사람들이거나, 혹은 다른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이 로마에 들어와 소식을 전했을 것이 확실하다.

 

23-29 유대인들의 배척에 반응하는 바울

 

바울이 많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바울이 유숙하는 집에서 성경을 통해 복음에 대해 설득하고 논증하는 내용.

-이 단락에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가장 긴 구약 인용 가운데 하나가 사용된다(26-27절= 이사야 6:9-10).
바울은 이 구약성경을 사용해 불신 유대인들을 도전하고 경고한다.


(1) 구약성경을 성령이 하시는 말씀이라고 밝힌다는 점(25절-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 도전
    성령께서 말씀하시는데 너희가 듣지 않는다!
    (2) 하나님이 구원을 이방인들에게 주셨다는 점을 지적하여 유대인들에게 경고 (28절)
    이방인들은 듣는데 왜 너희 선민 이스라엘은 듣지 않는가!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kalos)

  • 너희 조상들에게 적용되는 말이, 지금 너희들에게도 딱 맞는 말이다! 성령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BC 8세기경에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 않았다. 이제 성령께서 바울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지만, 여전히 듣지 않는다. 결국 너희 조상이나 너희나 다 똑같다!!
  • 동시에 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이 주장 안에 들어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진 선지자였다. 이제 바울이 이 선지자의 역할을 하면서 듣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

 

30-31 모든 사람을 영접하며 복음을 전하는 바울

 

*증거의 패턴
바울은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 그 후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 패턴은 사도행전 30-31절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앞 단락(16-29)에서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했다고 기록했다. 이제 이 단락에서 바울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유대인들이든, 이방인이든) 자기 셋집에서 영접하고 복음을 전한다.

 

30절


온 이태(two whole years)
만 2년 동안이라는 의미. 행 24:27에 의하면 바울은 벨릭스 총독 때에 2년을 감옥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로마에서 2년을 가택연금이 된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즉 바울의 감옥생활은 최소한 4년이 된다.

 

자기 셋집에서
(1) 바울이 자기 숙식을 자기 힘으로 책임져야 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NRSV, ESV번역 참고 = on his own earnings, at his own expenses).
(2) 거주하는 집의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비용을 지불하는, 세를 주는 방에서 살다.

  • 당시에 개인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의 특권층이나 귀족층만이었다. 따라서 우리 번역처럼 “셋집”이라고 하는 것은 집을 세주고 얻었다는 표현이라기보다는 건물에 여러 사람이 사는데 그 가운데 방(room) 하나를 세를 내서 살았다는 뜻이다.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대상: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다 영접해서 복음을 전했다는 의미. 반드시 이방인들만으로 그 대상을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 왜냐면 그다음에 복음의 내용을 “하나님의 나라” 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매우 유대교적인 용어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31절 “주 예수 그리스도” “주”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사용하던 예수님에 대한 호칭.=> 그러므로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 “다” 영접하고: 이 구절은 누가복음 2:30-32, 3:6에 예언된 구원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전해질 것이라는 사상을 연상시키며, 이 약속과 예언이 사도행전 28장에 와서 실현되고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31절
(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2)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치더라.

이 외관상 두 개의 표현은 서로 다른 두 개념이 아니라. 한 개념이다. 누가는 평행 법을 사용해 한 개념을 두 가지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통치하신다!!

 

바울의 설교 내용은 베드로의 설교 내용인 하나님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가르친 내용과 유사하다(참고, 행 2:36).

 

31절 “하나님 나라”
사도행전에서 반복적으로 중요 단락에 등장하는 개념이다(1:3; 8:12; 14:22; 19:8; 20:25; 28:23). 이 어구는 죄, 죽음 그리고 인류 구원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사도행전의 처음과 마지막이 “하나님 나라”로 수미쌍관(inclusio)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행 1:3; 28:31).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 하나님 나라=>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구원을 무엇으로 보는가?
죄로부터의 해방.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 하나님의 통치는 메시아인 예수의 사역과 죽음, 부활을 통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1:6)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 황제의 나라와 대조를 이루는 개념이다. 온 세상을 통치하는 로마황제의 나라와 대조되는 모든 민족을 아우르는 개념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제국의 한 부분이 아니라 로마제국과 구별되는 가치 전환과 회개를 요구하는 나라이다.

 

*담대하게(with all boldness)

  • 이 어구는 사도행전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데, 이 어구들은 항상 복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담대함은 성령께서 증인인 제자들로 하여금 진리를 말할 수 있게 능력 주심이라는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참고, 행 1:8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리라). 즉 외부의 어떠한 반대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진리를 말할 수 있도록 성령이 증인들에게 주시는 힘이 “담대”함이다.

*거침없이=거리낌 없이= 방해거리가 없이.


이 단어는 법률적 단어이다. 즉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어떠한 공개적인 법정 고소나 제한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요약하면,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즉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사명에 끝까지 신실했음을 이 마지막 단락은 보여준다. 주 예수께서 주신 사명을 바울은 완수한 것이다(20:21-24).

 

 

*결론부의 갑작스러운 마무리?


왜 누가는 갑작스럽게 사도행전을 마무리하는가? 바울의 로마 황제 앞에서의 재판이나 그의 순교(죽음)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고 사도행전을 마무리하고 있다. 왜 그런가?
사도행전은 바울의 전기가 아니라 복음의 확산이 주제이기 때문에 갑자기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의 일생에 대한 것은 미결이지만 복음의 확산에 대한 주제는 계속 진행되어진다.

 

*사도행전 결론부의 권면


(1)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바울, 스데반, 빌립은 구속사에서 독특한 역할을 했다. 우리가 그것을 반복해서 할 수 없다. 역사상에서 유일하고 독특한 사건이다.

(2) 그러나, 사도행전은 이들을 동시에 우리가 따라가야 할 신실한 제자도의 모범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다. 독특한 사도였다는 점에서는 우리가 따를 수 없지만 예수님의 제자였다는 것에 있어서는 우리가 따라야 한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 바울, 빌립과 같은 여러 사람들이 복음을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행 8:4; 11:19-21).

 

이 점은 사도행전을 읽은 최초의 수신자 그리고 또한 현재 우리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숙고하게 만들고 도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를 본받아야 하는가?
사도행전의 요약 진술문. 6:7 예루살렘에서의 복은 전파 요약, 9:31 유대와 갈릴리, 사마리아, 12:24 안디옥 교회, 28:31 사도행전의 결론 부분.
요약 진술문은 항상 복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위치에서 나온다. 터닝 포인트 때 나온다. 즉 사도행전이 요약 진술문으로 끝났다는 것은 그다음 단계의 복음 전파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제 복음 전파의 역할에 사도행전을 읽는 독자에게 참여하라고 부르는 것이다.

 

결론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천상 사역이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증인을 통해서 사역하신다.

-교회는 예수님의 대행자이다.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이 일하시기에 우리의 모습에서 예수님이 보여야 한다.

-기쁨의 신학.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기쁨이 있었다. 누가복음의 처음과 마지막도 큰 기쁨.

-성령
사도행전을 성령 행전으로 보는 것은 잘못 보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성령은 사람을 복음 전하는 증인을 만든다. 성령 충만할 때 사람을 지혜롭게 만드시고 순교할 수 있도록 믿음을 지켜주시는 분이다. 성령에 대한 이해를 크게 해라.--설교의 내용이 대상에 따라서 다르다. 설교할 때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해야 한다.


유대인: 구약을 통해서
이방인: 자연세계를 통해서
아덴: 스토아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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