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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도행전 26장 1-12절 바울의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변호

by 소북소북 2021.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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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6장

1-23절 바울의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변호/증언


1: 변명하되-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기회를 얻게 됨
베스도가 함께 배석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변호를 아그립바를 향해 가고 있다. 로마인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변호를 하고 있다. 로마법을 어긴 사람이 아님을 이미 보여줬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자서전적으로 진행되었다. 

 

바울이 자신이 유대인임을 강조하는 것은, 자기가 믿는 기독교도 유대교와 다르지 않고 같은 연장선 상위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도 처음에는 적개적이었으나, 무작정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기 신앙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은 확실한 신념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다.

 

회심에 대한 이야기는 26장에서 3번째 등장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예수를 전하는 소명을 받음을 더 강조하고 있다. 그 전한 복음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잡히게 됐음을 밝히고 있다. 사실은 자기도 그렇게 유대인들에게 저항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이 고대했던 그 소망을 자신은 전하고 있음을 말한다.


2: 변명하게 : 아폴로게이, 3: 너그러이- 인내를 가지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얘기는 바울이 청중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이렇게 시작함.


4-5: 엄한 파- 하이레시스, 나중에 영어의 'herecy'라는 위선이라는 단어로 변한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기고 서약한 자들, 특히 구약에서 제사장들에게 요구되었던 철저한 정결 예식이나 모든 소산의 십일조를 바치기로 서약한 사람들의 파에 속해서 살았다.

 

6:

‘소망’(엘피스). 23:6; 24:15; 26:6-7; 28:20.
어떤 소망을 가리키는가?
우리 조상에게 주신 약속에 대한 소망 때문이니, 바울은 자기가 여기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유대인의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말씀하신 약속과 예언들을 성취할 것을 믿고 소망하는 것을 말한다. 바울에게 있어 이 소망은, 이 약속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하였고 앞으로도 온전히 성취할 것을 믿는 믿음에 바탕하는 소망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하신 약속을 성취하셨다는 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를 말한다. 소망 때문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유대인들) 간절히 하나님을 받듬으로 바라던 소망인데 이 소망 때문에 내가 지금 고소를 당하고 있음을 바울은 말하고 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소망은 구체적으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소망, 부활신앙을 말한다.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부활을 통해서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고 믿고 있었고, 하나님을 섬김으로서 구원을 경험한다고 믿었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의 소망과 신앙에 충실하고자 하는 자신이 왜 그들로부터 이 고발을 받아야 하느냐며 변호하고 있다.

 

하나님을 죽은 사람(복수)들을 살리심, 바울은 일반적 부활을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 대부분들이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 부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으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다.

 

왜냐면 바리새인들도 이 부활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릴 수 있다면 왜 예수를 다시 살릴 수 없었겠느냐는 바울의 얘기. 그리고 이것은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부활은 예수의 메시아됨을 증명하는 것이다 라는 얘기.

 

 

9: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한다’는 말은
바울 자신도 적대적이었다는 과거 이야기.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주장하느 것을 반대하고 핍박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에 대해 주장했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했다는 뜻. 그래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고 고난을 받고 많은 성도들을 옥에 가두며….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할 때 내가 찬성투표를 하였다.

 

10:
‘찬성 투표를 하였고’

문자적으로 작은 돌을 내려 놓았다. (투표함을 의미).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 부분을 가지고 바울이 그 당시에 자기가 회심하기 전에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문자적으로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런 것이고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한 표를 행사했다는 것이냐 아니면 은유적 표현으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을 지지했느냐 는 뜻인가는 확실치 않으냐 은유적 표현으로 본다.


이 표현 때문에 72명 에 속하는 산헤드린 공회원에 속함으로 보기는 어렵다. 많은 성도들을 옥에 가두며 죽일 때에..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러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그 당시 스데반 외에도 많은 성도들을 옥에 가둘 뿐만 아니라 죽였는가?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데, 그들이 과연 그렇게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가?라는 문제이다.

 

여기서 바울의 입을 통해서 산헤드린 공회가 사형 집행권까지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그렇지는 않음을 누가는 말하고 있다. 그런 결정을 내릴 수는 있지만, 그 당시에 사형을 집행할 권한은 로마 총독권에 있었다. 그 그러므로 그 당시 상황을 누가가 수사학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적극적으로 바울이 지지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11: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예수를 부인하거나 저주하는 말을 강요했다는 말. 모독하다-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 관점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모독이란 단어를 쓰고, 그리스도인을 성도라고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인 관점에서 예기 하고 있다. 그 당시 각 회당이 치리권, 징계권은 가지고 있었다. 바울 역시도 자기의 고백에 다섯 번씩이나 회당에서 징계를 받았고 매를 맞았음을 고린도후서에서 말함. 바울이 회심하고 나서 회당에서 징계를 받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당함. 22장의 증언과 비교해 볼 때, 그리스도인들 핍박한 것에 대해 훨씬 더 강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자기도 열심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

 

12:
대제사장은 한 명이다. 복수가 사용될 때가 있는데, 그러면 대제상들이 많았느냐?

그 회에 대제사장은 로마에서 임명해서 한 명인데, 여기에서는 성전당국자들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종교지도자, 책임자들을 가리키는 말. 이 표현 때문에 여러 대제사장들이 있었다고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빨리 도래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일반 사람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가 지연된다고 믿어서 그들을 멸시하고 경멸했다.

 

하나님의 나라 장차 올 세대가 빨리 도래해야 한다라고 이 세대와 장차 올 세대를 나눠서 이분법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오심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선포하셨는데 그들은 장차 올 세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바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누가는 이 스토리를 전할 때마다 조금씩 변화를 준다. 독자들로 하여금 새롭게 느끼게 하는 문학적 자질을 누가가 발휘한다.


9:2에서는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가지고 가는데 여기서는 대제사장들.

여기서는 그 공문에 들어있는 권한과 위임을 받아간 걸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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